한 아파트 관리업체가 60세 이상 미화원들에게 근무중 사망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강남구 E아파트 관계자와 경찰 등에 따르면 이 아파트 미화원 K씨(64)는 지난 7월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로 이 아파트 지하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재 이 사고가 발생한 지 8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 K씨에 대한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K씨의 유족과 이 아파트 관리업체 H사간 법적공방이 진행중인 가운데 H사가 이 아파트 60세 이상 미화원들에게 근무중 사망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촉탁근무 동의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촉탁근무 동의서에는 ‘근무중에 불의의 사고 및 지병으로 인해 사망하더라도 법률적 관련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본인의 귀책사유를 불문, 어떠한 불이익 처분도 감수하겠으며, 촉탁근무신청에 동의합니다’라고 기재돼 있다.

이에 대해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 관계자는 “이 동의서는 근로자가 근무중에 사고로 숨지더라도 관리업체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내용의 이 촉탁근무 동의서는 불공정 각서”라며 “60세 이상 근무자더라도 노동법에 의한 노사관계 지위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힘없는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기본적인 의무까지 책임지지 않으려는 관리업체의 비인간적인 태도에 유감을 넘어 분노한다.”며 “이처럼 고령이란 이유만으로 인권을 무시하는 현상이 상당수 아파트에서 비일비재함에도 정부는 단속을 강화하기는커녕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 아파트 관리업체 H사 관계자는 “60세 이상 근로자에 대한 촉탁근무 동의서는 건강상 위험이 발생할 확률이 많다는 이유 등으로 내용이나 형식만 다를 뿐, 대다수 청소용역업체에서 받고 있는 공공연한 관행”이라며 “하지만 이 사고 이후 본사 차원에서 동의서를 검토한 결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앞으로 동의서를 받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동의서는 법적인 용도가 아닌 단지 형식적인 서류에 불과하다.”며 “K씨의 유족들에게 K씨의 사고가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연락했지만 합의가 잘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노무법인 B&K 임종호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산업재해를 입었을 경우 사용자가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H사가 받은 동의서는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며 “경제적으로 약자이고 고령인 미화원들에게 비인간적인 처사를 했다는 부분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지만 최저낙찰제로 인해 적정하지 못한 단가로 계약을 체결해 근로자의 복지나 근로환경에 무신경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임 노무사는 “아파트 미화원들의 열악한 복지수준 등 근로의 질이 개선될 수 있도록 관리업체는 물론 입주자대표회의도 의식을 전환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법률 개정 및 정책 개선 등을 통해 고령의 미화원들이 노동력의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